리더는 양보하지 않는다

양보(讓步)는 미덕(美德)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며 자랐다.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줄에서 한 발 물고,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을 상대에게 내미는 것. 그 작은 미덕들이 모여 한 사람의 품격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리더의 자리에 서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리더는 양보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문장이 거북하게 들린다면, 잠시 멈추고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리더가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리더가 차가워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리더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양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보(讓步)와 배려(配慮)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양보와 배려를 같은 말처럼 쓴다. 그러나 둘은 결이 다르다.양보는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행위다. 자리를, 기회를, 입장을, 때로는 원칙까지도. 양보의 주어는 ‘나’이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도 ‘나’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배려는 다르다. 배려는 상대를 헤아리되,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하는 일이다. 배려의 주어는 ‘나’지만, 그 시선의 방향은 ‘우리’를 향한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양보가 아니라 배려다. 그것도 조직의 목표와 전략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의 배려다. 이 단서를 놓치는 순간, 리더는 자신을 잃고 조직을 잃고 결국 사람을 잃는다.

함부로 양보하는 리더가 잃는 것

리더가 양보를 자주 하면 어떻게 될까.처음에는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 너그럽다고, 인간적이라고, 권위적이지 않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제의 방향이 오늘 흔들린다. 누군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그쪽으로, 다른 누군가 서운하다고 하면 또 그쪽으로. 정치든 조직이든, 지지자든 공동체든, 리더는 모두를 만족시키려 했지만 정작 따르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제야 깨닫는다. 사람들이 리더를 따르는 이유는 그가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어서라는 것을.

리더가 함부로 양보하는 순간, 그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의 마음이 먼저 떠난다. 자신이 지지했던 방향이 가벼이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내가 믿었던 건 뭐였을까.’ 그 회의감이 쌓이면 신뢰는 무너진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남는 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로운 리더 한 사람뿐이다.

미덕이 미덕이 아닐 때

삶에는 위치에 따라 미덕의 모양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개인으로서의 양보는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누군가의 결정에 다수의 운명이 달려 있을 때, 양보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 회피의 다른 이름이 된다. 결정을 미루는 일, 갈등을 피하는 일,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 우리는 종종 그것을 양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다.

진짜 어려운 일은 양보가 아니라 버티는 일이다. 누군가의 서운함을 감수하면서도 방향을 지키는 일.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No’라고 말하는 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을 가는 일. 그 무게를 견디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른다.

그래서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리더는 양보 대신 배려를 해야 한다.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되, 가야 할 방향은 놓지 않는 것. 누군가의 입장에 공감하되, 결정의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 부드럽게 말하되, 흔들리지 않는 것. 따뜻하되, 단단한 것.

이것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리더가 된다. 따뜻하기만 한 사람은 친구이고, 단단하기만 한 사람은 상사일 뿐이다. 리더는 그 사이 어딘가, 가장 어려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다. 양보하지 말라는 말은, 인색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라는 말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진짜 필요한 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를 가진다.

리더의 자리는 그런 자리다. 미덕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하는 자리.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보다, 옳은 방향이라는 책임을 먼저 짊어져야 하는 자리.

돌아보니, 리더는 양보가 아니라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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