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공정(公正)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다.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공정(公正)을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공정을 이야기해 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현재의 어느 국가나 사회도 공정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은 대의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불과 100여 년 전이고 그러한 대의민주주의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논의와 그리고 수 많은 희생을 통해 다듬어지고 현실에 맞는 제도로 변화해 왔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일반인이 공정(公正)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 정치 제도의 정착을 의미한다.
공정(公正)은 그렇게 인류의 오랜 역사와 비교해 보면 우리와 함께한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만큼 공정(公正)의 정의는 의외로 인류 보편적인 기준으로 표현되기 싶지 않다. 그 사회와 국가의 역사적 배경과 또 각자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공정(公正)의 기준과 정의는 명확하게 혹은 미묘하게 다르다.
한자로 공정은 공평할 공(公), 바를 정(正)으로 그 의미를 그대로 공평하고 바른 일과 판단, 결과를 의미한다.
그러나 마이클 셀던 교수의 명저 ‘Justice’의 내용을 굳이 상세히 논하지 않아도 진지하게 공정(公正)을 논하기 시작하면 100인 100색의 주장이 부딪히고 결국에는 권력과 지위와 부가 있는 자들의 강한 목소리에 많은 대중이 암묵적으로 서로의 이익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공정(公正)의 의미가 정해지게 된다. 그래서 공정(公正)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변화돼 왔다. “그때는 그것이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라는 그러한 의미이고 그러한 가변적인 의미 변화를 굳이 비판할 이유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공정(公正)자체가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진정한 공정(公正)은 어떻게 논의되면 좋은가.
공정(公正)은 영어로 Fair에 그 뜻이 가깝다. 정의는 Justice.
앞서 설명한 민주주의 근원이 그리스 철학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면, 라틴어와 영어의 밀접한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영어의 Fair라는 뜻에서 그 의미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Fair의 뜻 속에는 물론 공평, 공정의 뜻도 있으나 대표적인 뜻은 ‘타당한’, ‘온당한’ 이라는 뜻이 부합된다. 공평과 공정이라는 표현보다 매우 가변적인 것으로 즉 서로가 서로의 관점과 상황에서 생각의 여지를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표현이다. 타당하고 온당하다는 것은 속된 말로 무 자르듯이 명확할 수는 없어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시대를 넘어 보편적으로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적인 소견을 전제로 ‘배려와 여유’ 두 가지 내용에 부합될 때 진정한 공정(公正)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인정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정(公正)은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정(公正)은 계산기로 계산할 수도 없으며 건축물처럼 만들어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온당하고 타당한 배려와 여유있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는 타인과 진정한 공정(公正)을 논할 수 있다.
이를 명확하게 2,300여 년 전에 설명한 사람이 있다. 우리가 모두 이름만큼은 잘 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정(公正)에 대하여 논한 내용에 그 답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피에이케이아’를 이야기한다. 에피에이케이아는 근원적 공정성, 공평성을 의미한다. 법의 해석을 문자대로만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공정(公正) 또한 눈에 보이는 그 상황과 주장에만 집중해서는 공정(公正)을 이룰 수 없다. 각자의 생각과 관점,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근원적 공정성과 형평성은 이러하다.
자신의 권리를 과도하게 주장하지 않고 도리어 법이 자기를 지지하더라도 자신의 몫보다 더 적게 받아 만족하는 사람’은 공정(公正) 하다.
아리스토 텔레스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보편타당함과 온당함의 주장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그러한 것들이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이지는 것이 공정(公正) 한 사회이고 국가라고 생각한다. 근원적 공정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설명에는 갖은 자의 배려와 여유가 있다.
공정(公正) 한 관계와 사회는 갖은 자의 배려와 여유가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갖은 자의. “명예”가 될 때 이루어진다.
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마태복음20장의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를 참고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피에이케이와 함께 진정한 공정(公正)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